팝 아트를 이야기할 할 때 빼놓지 않는 앤디 워홀.
그의 본명은 앤드루 워홀라 주니어(Andrew Warhola Jr.)로
미국 펜실베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1928년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앤디는 대학에서 상업 예술을 공부했는데요.
졸업과 동시에 뉴욕으로 날아가 잡지 광고를 만들고
일러스트를 제작하는 삽화가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제법 잘 나가는 작가였던 앤디는 1960년대에 들어
누군가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일을 그만 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로부터 앤디는 캠벨 수프 캔을 실크 스크린에
찍어내고 마릴린 먼로를 담아내며 재키 케네디의
사진을 상업용 이미지로 이용해 사회적인 이슈와
반항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앤디는 유명 인사를 비롯해 미국의 산업, 경제적
문제들을 비꼬는 시선으로 작품을 만들어 큰 주목을 받았죠.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을 연구하고 만날 수 있었고
대인관계의 폭이 넓어지면서 영화와 사진에도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답니다.
실제로, 앤디는 1960년대 중반부터 60편 이상의
언더그라운드 영화 제작에 참여했는데요.
그 중에는 <첼시 걸즈>라는 히트 영화도 포함돼 있습니다.
앤디의 사망 이후에는 앤디 워홀을 직, 간접적으로
다룬 영화들이 다수 제작되어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그의 업적과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기도 합니다.
앤디는 자신의 ‘팩토리’ 스튜디오에 예술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인기 아티스트를 초대해 친분을 쌓거나
그들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친분을 유지하고 했는데요.
이들 중에는 장 미쉘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와
제프 쿤스(Jeff Koons) 등이 있습니다.
60년대를 기점으로 미국의 물질주의를 상징적으로
대변한 앤디는 오늘날까지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인플루언서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데요.
위험한 총격에서 살아남은 뒤 1987년 페니실린
부작용에 의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습니다.